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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생의 자기소개(韓国の大学生の自己紹介)


어떤사람일까?(どんな人だろう?)

평범한 삶을 꿈꾸는, 아직 평범하지 않은 학생.
平凡な生活を夢見る、まだ平凡ではない大学生。

다른 대학생들과 비슷하게 나는 대학을 다니고, 알바를 하며 용돈을 벌고,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한다.
他の大学生たちと同じように私は大学に通って, バイトをしながら小遣いを稼ぎ, 就職のための勉強をする。

그런 내가 ‘아직은’ 평범하지 않다고 말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될 것이다.
そんな私が「まだ」平凡ではないと言った理由を知りたければ、この文を最後まで読んでみれば良いだろう。

일단 내 소개를 T적으로 표현하자면…
一応私の紹介をT的に表現すると···

취미 = 독서와 글쓰기, 카페에서 노래들으며 멍 때리기
趣味=読書と作文、カフェで歌いながらぼーっとする

습관 = 아침 알람을 들으며, 10분간 누워있기(다시 잠들지 않는게 중요 포인트)
習慣=朝のアラームを聞きながら、10分間横になっている(二度と寝ないことが大事ポイント)

MBTI = ISTP (그런데 친구들은 내가 INFJ라 강력히 주장한다.)
                  (ところで友達は私がINFJだから強く主張する。)

전공 = 농업기계공학 + 위기관리학 (다전공)
専攻=農業機械工学+危機管理学(多専攻)

경험 = 고교 사회적 협동조합 학생이사(1년간) / 군대 만기 전역 (화생방병) / 택배 상하차, 술집 서빙, 설거지, 전단지 홍보, 사은품 포장, 식당, 마트, 행사 안내 알바 / 농업 취업 동아리 활동, 독서모임 운영, 스터디 운영, 중앙아시아 지역 이해 과정 수료, SK그룹 사내대학 미래역량 프로그램(써니C) 수료, 등등
経験=高校社会的協同組合学生理事(1年間)/ 軍隊満期除隊(化生放病)/ 宅配上下車、 飲み屋サービング、 皿洗い、 チラシ広報、 ギフト包装、 食堂、 マート、 イベント案内バイト / 農業就職クラブ活動、 読書会運営、 スタディー運営、 中央アジア地域理解課程修了、 SKグループ社内大学未来力量プログラム(サニーC)修了など

이렇게 쓰니, 뭔가 많이 재미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법하다…
こう書くと、何か面白くない人かも知れないという気がしてもおかしくない···

하여튼 작년까지만 해도 약간 철없던 청년에서 올해는 각성한 한국의 대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무 깊게 바라보지는 말고, 가볍게 읽어주세요.
とにかく、去年まではちょっと分別のなかった青年から、今年は覚醒した韓国の大学生についての話。 あまり深く見ないで、軽く読んでください。

어린 시절의 나(幼いころの私)

어린 시절의 나는 천진난만했다. 세상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던 나이였다.
子供の頃の私は無邪気だった。 世の中を知るには若すぎた年だった。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집의 가정 형편은 그리 좋지 않다. 단편적으로 대학 진학 이전, 즉 고등학교 시기까지 옷 하나라도 내 마음대로 살 수 없었으며, 새로 산 옷보다는 형 혹은 친척에게 물려받은 옷이 더 많았다.
幼いころから今までわが家の暮らし向きはあまりよくない。 断片的に大学進学以前、すなわち高等学校時期まで服一つでも自分の思い通りに生きることができず、新しく買った服よりは兄あるいは親戚から受け継いだ服がさらに多かった。

더 나아가 우리 부모님은 건강 악화로 경제적인 활동이 불가능했고, 나는 나라의 지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さらに、私の両親は健康悪化で経済的な活動が不可能であり、私は国の支援で成長することができた。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초등학교를 등교를 했고,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 학원을 다녔다. (물론 그때는 집안 형편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말이다.)
歩いて10分ほどかかる小学校に登校し、お金のないお金を貯めて塾に通った。(もちろんその時は家の事情についてはよく知らなかった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학원은 한 개 이상 다녔다. 지인 할인, 장학금 등을 활용해서 말이다. 하지만 난 딱히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더구나 따로 용돈이 없어 청소년 시기, PC방과 노래방을 가본 적이 정말 한 손에 꼽는다. 그래서 난 돈이 필요 없는 도서관을 자주 갔고, 정말 많은 책들을 읽었다.
小学校、中学校、高校まで塾は一つ以上通った。 知人割引、奨学金などを活用してだ。 (苦しい状況の中でも何とか私を勉強させようとしてくれた両親にいつも感謝する。)しかし私は別に学業に興味を感じなかった。 しかも、別途の小遣いがなく、青少年の時期、インターネットカフェやカラオケに行ったことが本当に片手に挙げられる。 それで私はお金が要らない図書館によく行ったし、本当にたくさんの本を読んだ。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독서가 정말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주로 만화책으로 시작해서 인문학 책까지, 책 읽는 재미를 깨달을 수 있었고, 정말 많은 배경지식들을 얻을 수 있었다.
今思えばあの時の読書が本当に私に大きな助けになった。 主にマンガから始まって人文学の本まで, 本を読む楽しさを悟ることができたし, 本当に多くの背景知識を得ることができた。

고등학생 시절의 나(高校生時代の私)

초등학교 시절에는 전교 부회장, 중학교 시절에는 반장과 부반장으로 활동했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학생회 활동을 하긴 했지만 딱히 열심히 하진 않았다.
初等学校時代には全校副会長、中学校時代には班長と副班長として活動したが、高等学校進学後には生徒会活動をしたが特に熱心にはしなかった。

사실 지금 와서 고등학교 기억을 떠올리면, 절친들과 협동조합 동아리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특히 협동조합 동아리 활동은 꽤나 뜻깊은 활동이었다. 교내 매점을 운영하고, 수익금으로 나와 비슷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학생들 복지를 위한 활동들을 많이 했다.
実は今になって高校の記憶を思い浮かべると、親友たちと協同組合のサークルしか思い出せない。 特に協同組合のクラブ活動はかなり意味深い活動だった。 校内売店を運営し、収益金として出てきて似た低所得層の学生たちに奨学金を支給し、学生たちの福祉のための活動を多くした。

(물론 협동조합 이외에도 친구들과는 졸업 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만나는 만큼 잊을 수 없는게 사실.)
(もちろん協同組合以外にも友達とは卒業後何年が過ぎた今もずっと会うだけ忘れることができないのが事実)

군대에서의 나(軍隊での私)

군대 이야기는 정말 시시콜콜한 내용들뿐이라 시간이 많은 사람들만 보자.
軍隊の話は本当にくだらない内容ばかりなので、時間が多い人たちだけ見よう。

사실 군대를 갈 때에는 정말 마음 편히 갔다.
実は軍隊に行く時には本当に楽な気持ちで行った。

대학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가 발생했고, 대학은 개학을 몇 주간 미루다가 비대면 강의를 시작했기 때문에 기대하던 대학생활을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 친구들 얼굴은 딱 한번 노트북 속 화면으로 잠깐 본 게 전부이고, 코로나라 밖에는 거의 나가지 못했으니 그때의 그 지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大学入学と同時にコロナが発生し、大学は始業を数週間先送りして非対面講義を始めたために期待していた大学生活を楽しむ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だ。 大学の友達の顔はたった一度ノートパソコンの中の画面で少し見たのが全てで、コロナのせいで外にはほとんど出られなかったので、その時のその退屈さは言葉では言い表せなかった。

잠깐 코로나가 약해지던 시기,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을 때
ちょっとコロナが弱まった時期、高校の友達に会った時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군대나 갈까?’
「コロナがいつ終わるか分からないけど、いっそ軍隊に行こうか?’

하는 생각으로 친구와 함께, 정말 뜬금없이 군 입대를 신청했고, 덜컥 합격해버렸다. 내가 지원한 병과는 ‘화생방 병과’로 과거에 그나마 인기있던 병과라 떨어질 줄 알았으나, 코로나로 입대 신청 인원이 줄어 바로 합격해버렸다. (내가 기억하기로 2.5:1 경쟁률에 꼴등으로 합격했다.)
という思いで友達と一緒に、本当にいきなり軍入隊を申し込んだし、いきなり合格してしまった。 私が志願した兵科は「化生放兵科」で過去にそれでも人気があった兵科なので脱落すると思ったが、新型コロナウイルス感染症で入隊申請人員が減ってすぐに合格してしまった。 私が記憶するにはその当時2.5:1競争率にビリで合格した

군대도 사람사는 곳이라 잘 지낼 수 있겠지 생각했지만, 역시 군대는 군대였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입대한 2022년 10월부터 2024년 4월까지 군대에서의 삶은 힘든 나날이었다.
軍隊も人が住んでいる所だから元気に過ごせるだろうと思ったが、やはり軍隊は軍隊だった。 今はよく分からないが、私が入隊した2022年10月から2024年4月まで軍隊での生活は大変な日々だった。

나의 맞선임까지는 꽤나 부조리가 심각했다고 한다.
私のすぐ前の選任まではかなり不条理が深刻だったという。

면전에 욕하는 것부터, 힘들고 더러운 일을 시키는 것 등등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물리적인 폭력은 확실히 없었다.
面と向かって悪口を言うことから、辛くて汚いことをさせることなどだが、時代が時代なので物理的な暴力は確かになかった。

(들었던 것 중 제일 심각했던 건, 잘 안 씻는 선임이 몸을 벅벅 긁은 맨손으로 후임의 저녁식사로 나온 반찬과 밥으로 초밥을 만들어 먹인 사건이었다.)
(聞いた中で一番深刻だったのは、あまり洗わない先任が体を引っ掻いた素手で後任の夕食に出されたおかずとご飯で寿司を作って食べさせた事件だった)

뭐, 내가 겪은 부조리는 ‘무관심’이었는데, 일병 동안 열심히 살다보니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개같이 구르면서 일 배우면 좋아질 거라는 친한 선임의 조언 덕분이었다.)
まあ、私が経験した不条理は「無関心」だったが、一等兵の間に熱心に生きていたら自然に解決された。 (犬のように転がりながら仕事を学べば良くなるという親しい先任の助言のおかげだった。)

나 또한 일병, 상병, 병장을 겪고 고참이 되어보니, 느꼈던 거지만 요즘 후임들은 정말 빠졌다. 일머리도 없고, 의욕도 없고, 생각이 없다. 다들 오고 싶어서 온 군대는 아니라는 걸 모두 알았고, 군인 인권 문제도 대두되기 시작해, 그저 느슨해진 부대 분위기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私も一等兵、上等兵、兵長を経て古参になってみると、感じたことだが最近後任たちは本当に抜けた。 働きもないし、やる気もないし、考えもない。 皆来たくて来た軍隊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皆理解していたし、また軍人の人権問題も台頭し始めたので、ただ緩んだ部隊の雰囲気をそのまま放っておいた。

그렇게 군대는 점점 개판이 되어가고, 부사관이 되었던 선임들의 오열이 들려왔다. 장교도, 부사관도, 병사도 모두 군인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해지고, 그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そのように軍隊はますますめちゃくちゃになり、副士官になった先任たちの嗚咽が聞こえてきた。 時間が経てば経つほど将校も、副士官も、兵士もすべて軍人としての力量が不足し、その数字もますます減っていた。

(전쟁나면, 진짜 매우 정말 너무 위험해질 거라는 예감이 팍 든다.)
(戦争になったら、本当に/とても/本当に/とても危険になるという予感がする。)

하여튼 군대도 제대했고 나는 다시금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とにかく軍隊も除隊し、私は再び大学生になることができた。

대학생의 나(大学生の私)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일생일대 목표 중 하나는 대학 입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취업이라고 나는 감히 추측한다. 요즘에는 대학 편입이나 직장 이직이 활발하다고는 하지만, 첫 대학과 첫 직장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韓国における多くの人々の一生一つの目標は大学入学であり、もう一つは就職だと私はあえて推測する。 最近は大学編入や職場離職が活発だとはいえ、初めての大学と初めての職場は非常に重要に考えられるため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취업 후 직장과 연봉은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하나의 잣대일 것이다.
私だけがそう思っているのか分からないが、就職後の職場と年俸は社会的地位を決める一つの物差しだろう。

그리 중요한 만큼이나 대학에 대한 기대는 컸다. 대학에 가기만 한다면, 나의 많은 역량을 기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생각 다양한 관점들을 배울 수 있을 거이라 생각했다.
それほど重要なだけに、大学に対する期待は大きかった。 大学に行くことさえできれば、私の多くの力量を育てることができると思ったし、多様な人々多様な考え、多様な観点を学ぶことができると思った。

하지만 현실은 꽤나 달랐다. 대학 강의는 그저 암기 그것도 족보 암기가 주였고, 교수님은 사실 상 그런 현실을 방관했다. 그리고 딱히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시지 않는다. 경험할 수 있는 대학 및 사회 생활의 폭은 한정적이다.
しかし、現実はかなり違っていた。 大学の講義はただ暗記、それも試験問題の系図暗記が主であり、教授は事実上そのような現実を傍観した。 そして、別に弟子たちの就職のために多くの努力を傾けない。 経験できる大学や社会生活の幅は限られている。

대학 복학 후 거의 1년 반은 뇌를 빼고 다녔던 거 같다. 딱히 놀지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내가 놓여진 대학생활의 중요성 혹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大学復学後、ほぼ1年半は脳を抜いて通っていたようだ。 別に遊ぶことも、勉強を一生懸命にすることもなかった。 私が置かれた大学生活の重要性あるいは人生の意味を見つけられなかったためだ。

그저 방황한 것이리라.  ただ彷徨したのだろう。

올해가 시작되고 나는 다시금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방황을 끝냈다. 나의 취미와 진로를 재정리했고, 하나하나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6개월 동안 쉼없이 달려왔다. 정말 바쁘게 살아보니, 쓸데없는 걱정들도 잠시 접어둘 수 있었다.
今年が始まって私は再び本を読み始め、考えを整理した。 そして彷徨を終えた。 私の趣味と進路を再整理し、一つ一つ実践し始めた。 そして、この6ヵ月間、休まず走ってきた。 本当に忙しく暮らしてみると、余計な心配もしばらく止めておくことができた。

결론(結論)

日本旅行した私

뭔가 대단한 무언가를 쓰지는 않았다.  大したことは書いていない。

그저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며, 떠오르는대로 써내려갔을 뿐이다.
ただ今までの自分を振り返り、思いつくままに書き下ろしただけだ。

이 글의 제목을 짓자면, ‘가난한 대학생의 23년 일기 요약본’ 정도라 할 수 있겠다.
この文のタイトルをつけると、「貧しい大学生の23年日記要約本」程度と言える。

앞서 첫 글머리로 평범하지 않은 대학생이라 표현한 것은 단순하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함을 꿈꾸지 않기 때문이다. ‘평범’도 누군가에겐 꿈이 될 수 있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これに先立って、冒頭で「平凡ではない大学生」と表現したのは単純だ。 平凡な人は平凡さを夢見ないからだ。 「平凡」も誰かにとっては夢になりうるという言葉も共に伝えたい。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는 잘 모르겠다.
これからどんな文を書くかはよく分からない。

지금 생각한 것 = 1. 한국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한 한국 뉴스
                             2. 나의 일상
                             3. 내가 쓴 시 혹은 글 정도?
今思ったこと = 1.韓国に関心のある人のための韓国ニュース
                           2.私の日常
                           3.私が書いた詩あるいは文ぐら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만약 댓글 달아주신다면, 제가 아는 한 답을 해보겠습니다.)
これから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もしコメントしてくだされば, 私が分かる限り答をして見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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