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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in Wi(l)d Screen Baroque

부제 : '에에올' 과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의 얽혀읽기.

기고자 : 네프요나

'얽혀읽기'란?

'얽혀읽기'란, 이 기사만에 한정해서 쓰는 독해방식입니다. 정독(클로즈 리딩)이나 원독(디스턴트 리딩)은 들어본 적 있어도, 그런 말은 금시초문이란 분들, 실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후술하겠습니다만, 이 기사의 키워드인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가 꽤나 수상한 개념이며,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에 대해서도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인지 아닌지 검증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얽혀읽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려 합니다. 이 글에서 저는,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에 '에에올'이란 구체적인 항목을 기입함으로써 그 개념을 안정시키고, 반대로 '에에올'을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란 장르를 통해 보는 것으로 새로운 독해를 탄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좀 어렵게 말하면, 위에서 든 빈약한 개념과 새로운 텍스트를 상호참조하여, 쌍방의 의미우주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얽혀읽기'란 방법론의 목적입니다. 이 방법론에 가까운 것은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 크리틱'입니다만, 트랜스 크리틱은 양 쪽의 시점에서 양 쪽을 서로 비판하여 보편성을 획득하는 방법론이며, 애초에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던 저작들(칸트, 마르크스)을 분석하고 있기에 이 기사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 너무나 록큰롤한걸.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란 SF, 그 중에서도 스페이스 오페라의 하위 장르를 일컫습니다. 이 용어는 브라이언 알디스에 의해 1973년에 소개되었는데, 그의 정의를 직접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번역 필자).

그 작품들의 플롯은 치밀하면서도 황당무계하며, 또 그것들의 주민들은 짧은 이름과 짧은 생명을 갖고 있다. 그것은 불가능해보이는 것들을 가능하도록 손쉽게 바꿔놓는다. 이들은 바로크의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따르는데, 즉 세련되었다기보단 대담하고 생기넘치며, 엑센트릭하다. 때론 그렇기에 절도를 잃고 지나치게 호화로워지기도 한다. 그 작품들은 와이드 스크린을 즐기며, 우주나 시간여행을 주로 설정으로 차용하고, 적어도 태양계 전체를 배경으로 하곤 한다.

브라이언 알디스가 이런 용어를 만들어낸 맥락에는, 스페이스 오페라에 대한 평가가 ‘닳고 닳은 지겨운 소재’로 전락한 것에 대한 반발심이 있습니다. 그는 <파괴된 사나이>나 <타이거! 타이거!>와 같은 작품도 스페이스 오페라에 포함되며, 이러한 새로운 스페이스 오페라 = 뉴웨이브 스페이스 오페라를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라고 명명한 것이지요. 다만, 스페이스 오페라란 말이 이미 널리 보급되고 또 멸칭으로서 의미도 약화된 영어권에서 이 용어는 금방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헌데, 일본에서는 이 말이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로 확산되었습니다. SF작가 쿠사노 겐겐의 분석을 간략히 정리하면, 브라이언의 비평집이 일본에 소개되었을 당시에 이 용어를 “아이디어의 격류에 의한 아찔함(アイデアの奔流によるめまい)”로 재해석한 다른 비평가의 책도 출간되면서 일본에선 이쪽에 더 무게를 두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부분을 짧게 인용하겠습니다.

재밌게도, 본래라면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을 왓슨 대 프리스트 논쟁과,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가 일본에서는 관련하여 이야기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으로써, 본래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의 모체였던 뉴 웨이브 운동과는 단절된 채로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왓슨은 뉴웨이브 운동에 비파적이기도 했습니다.)
이리하여, 일본 SF계에 있어서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의 중핵에는 '아이디어의 격류'를 놓는 이해가 퍼져나갔습니다.

이에 따라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는 이른바 과학적인 치밀함이나 고증을 중심으로 두는 하드SF의 대립축으로서, 황당무계한 상상력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SF작품들을 이르게 됩니다. 저 역시도 영미SF를 좀 읽어봤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이라하면 문자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이하, 극장판 '스타라이트') '기린' 역할을 연기한 쓰다 겐지로 씨의 목소리가 떠오르곤 합니다.

정리하자면,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는 탄생지인 서양에서는 고작해야 스페이스 오페라의 서브장르에 불과했던 개념이었던 것에 비해, 일본에서는 다른 SF논쟁과 접목되어 왕성하게 자라난 개념이라는 기묘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이, 극중가로 Wi(l)d-Screen Baroque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극장판 '스타라이트'에 대해, 쿠사노 겐겐 씨는 원래 의미라면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가 아니지만, 아이디어의 격류라는 정의라면 그렇게 위치지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파격적인데다가 아무거나 될 수 있으니까 죽여주게 멋있다'는 게 '록큰롤'한 일이라면,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는 그야말로 '록큰롤'한 장르인 셈입니다.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여, 와이드 스크린으로 돌아오지 않겠나?

저는 여기서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가 갖는 여러 지류들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시점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의 핵심을 ‘와이드 스크린’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와이드 스크린’은 분명히 영화를 염두에 둔 단어이며, 브라이언 알디스가 스케일을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영화 중에서도 볼거리를 제공하는=스펙터클한 것들을 이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영화는 4D체험이니 아이맥스니 돌비 시네마니 여러 기술들로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볼거리의 역사는 거의 100년을 거슬러 오릅니다. 이를 테면 1900년에 등장한 두 영화, “잭이 지은 집”은 역재생을 통한 시간의 역전으로, “마차에 치이는 기분”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샤프트가 쓸법한 타이포그래피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영어권의 ‘wide-screen baroque’에서 시공간을 여행하거나 태양계 전체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와이드 스크린' 즉 영화의 스펙터클함이 갖는 예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고. 또한, 일본어권의 「ワイドスクリーンバロック」에서 나타나는 (황당무계한) 아이디어의 격류 역시, 이러한 스펙터클함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이렇게 볼 경우에, 우리는 두 가지 지류로 갈라져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던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란 개념을 간단히 통합할 수 있습니다. 단,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는 어디까지나 SF에 속하며, 적어도 스페이스 오페라와 근친관계에 있음을 그 한계선으로 설정해야 하겠지요.

이를 테면 (작법술로써, 라는 조건문이 붙지만)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의 근례인 『천원돌파 그렌라간』, 『킬라킬』, 극장판 '스타라이트'가 모두 영상작품인 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애초에 와이드 스크린 = 스펙터클 지향이 갖고 있던 필연적인 흐름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심증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증만으로는 진상에 도달할 수 없는 법이지요. 그렇기에 저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증인을 소환하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영화 '에에올'이 저의 추리를 담보해줄 증인입니다.

'에에올'이 어째서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인 거야?

먼저 영화 '에에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독자분들을 위하여, 간략한 줄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소개된 줄거리 이상의 전개에 대해서도 논할 것이며, '스포일러'가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피하고 싶다는 독자 분들은, 먼저 줄거리를 읽고 흥미가 생긴다면 영화를 본 뒤에 다시 이 포스트에 돌아오셔도 좋겠지요. 일본 공식 사이트에 의하면, '에에올'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경영하는 코인세탁소의 세금 문제, 아버지 부양 부담에다가 반항기인 딸, 상냥하지만 믿음직스럽지 못한 남편과, 한 가득의 문제를 안고 있는 에블린.
그러던 도중, 남편에게 빙의된 "다른 세계의 남편"으로부터, "전우주에 혼돈을 몰고올 강대한 악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너뿐이다"라며 세계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설마, 하고 놀라는 에블린이었지만, 악의 일당들에게 공격당해 멀티버스로 점프! 
쿵푸의 달인인 "다른 세계의 에블린"의 힘을 얻어 싸움에 임하지만, 이럴 수가, 그 악의 정체는 바로 딸 죠이였다…!

 이 줄거리만으로도 '에에올'이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라는 두 가지 정의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브라이언의 정의를 따르면, 멀티버스=평행우주를 무대로 하면서 작은 코인 세탁소 주인일뿐인 에블린이 "전우주에 혼돈을 가져올 강대한 악"가 맞서게 된다는 전개는, 그야말로 대담하고 황당무계하단 표현에 어울립니다. 이 줄거리에는 적혀있지 않습니다만, 이 영화는 꽤나 유머러스하기도 합니다. 이 줄거리에서도 "다른 세계의 힘을 얻어"란 표현이 나옵니다만, 그걸 얻는 방법이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며 슬랩스틱부터 성적인 행위까지 '생기넘치는' 것들뿐입니다. 한편, 일본에서 쌓아온 정의를 적용시키면 이 영화는 '평행우주'란 설정으로 여러 아이디어를 쌓아올리고 있습니다. '강대한 악'의 정체를 좇아 그녀를 먹으려는 영화 『매트릭스』 같은 세계, 『라따뚜이』의 레미가 다른 동물로 바뀌어버린 세계, 왕가위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연애드라마가 펼쳐지는 로맨틱한 세계가, 서로 교차하고 겹쳐서 공명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이디어의 격류입니다.

하지만, 위의 사실을 확인한 뒤에 "따라서 '에에올'은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였습니다'라고 결론지어버리면, 얽혀읽기를 시도한 의미가 없어집니다. 애초에 우리가 '에에올'을 소환한 목적은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를 '와이드 스크린'으로 되돌리기 위함이었음을 독자 여러분도 잊지 않으셨겠지요.

이를 위해서 조금 먼 길을 택해봅시다. 급작스럽게 화제가 바뀌지만, '에에올'에서 흥미로운 점은, '어떤 우주'에서 일어난 일만을 모아서 편집해보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단편영화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우주를 편의상 '단편영화우주'라고 부르도록 합시다. '단편영화우주'는, 영화의 설명에 따르면 '국세청에서 아무 일도 없이, 세금을 정리하러 집으로 가족들이 돌아온 우주'입니다. 이 '단편영화우주'는 영화가 진행될 때 종종 막간극처럼 나옵니다만, 여타의 우주들과는 달리 '바로크한' 일도 '록큰롤'한 일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강대한 악과 맞서 싸우지도 않고, 주인공 에블린이 영화배우가 되지도 않으며, 쿵푸를 구사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주인공 에블린이 이혼장 문제로 남편과 말싸움을 하거나, 세탁소에서 하는 연말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난동을 피우거나, 어떤 일로 낙담한 딸을 위로하는 것뿐인 세계입니다. 즉, '우리들의 현실'과 가장 가까운 우주이며, 멀티버스란 설정은 애초에 이 '단편영화우주'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준비된 볼거리=스펙터클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학적으로 바꿔 표현하면, '단편영화우주' 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레토릭(수사적인 표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새롭게 제시할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레토릭=이야기 방식에 대해서, 저는 전에 극장판 '스타라이트'에도 똑같은 평가를 내린 적 있습니다.

학교라는 둥지를 벗어나 날아오르기 전의 불안과 각오, 그걸 두 사람이 마주 누워 이야기할뿐인, 졸업여행의 숙소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밤의 고백담. 그것이 이 소박한 영화의 정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략) 내용은 소박하지만, 그 대화방식을 10배 20배, 300배까지 부풀려서, 각종 영화나 연극을 인용한 과장된 형태와 스타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평가는, '에에올'에 적용해도 동일합니다. '단편우주영화' 그 자체만을 모아서 편집하더라도 분명 훌륭한 '단편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 장르에는 속할 수 없습니다. 그 '단편영화'에는 그 어떤 볼거리=스펙터클이 존재하지 않으며, 어이 없는 일에 유발되는 웃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영화는 담백하고 리얼한 영화이겠지만, 그래서는 우리들이 일상에서 얻는 리얼리티에 근접할 수 없습니다. 별 거 아닌 일에 세상이 망할 것처럼 초조하게 굴고, 별 거 아닌 일에 상처입어서 엉엉 울고, 별 거 아닌 일에 깔깔 웃어대는, 그것이 우리들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세계란 말을 한 김에 더 말하자면, 공식 영화 사이트에 '반항기인 딸'이라고만 적혀있지만, 딸인 죠이는 레즈비언이며 에블린도 '자기나름대로' 그녀를 이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에블린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결혼을 반대받았던 경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바꿔 말하면, 실은 에블린은 레즈비언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딸의 연애를 허락한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자기 아버지는 그런 결혼은 반대할 것이 뻔할 뻔자니 죠이에게는 당분간 함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반항기'로 정리하는 건 너무나 거친 요약이지만, 일단 그것은 치워둡시다. 왜냐면 이 글에서는 '전 우주에 혼돈을 몰고올 악'으로 묘사되는 죠브(다른 세계의 죠이)가, 영화 안에서 사치스럽고 성적인 여성으로 항상 나탄다나는 점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단편우주영화'의) 에블린은 "역시 동성애자니까 방탕한 짓이나 하고 다니겠지"라고 멋대로 착각하고 있기에 그런 모습으로 죠이가 등장한 것이겠죠. 또, '전 우주에 혼돈을 가져올'이란 것도, 실은 딸인 죠이가 굉장히 우울한 상태이며 자신의 세계를 끝내는 것, 즉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음을 암시합니다. 반복하지만, 이런 것이 '우리들의 세계'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좋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어느새보니 모순덩어리가 되버려서, 멋대로 착각하고는, 가장 끔찍한 선택지를 고르고 맙니다.

다만, 한 명의 백합 팬으로서는 딸인 죠이의 연애 이야기보다도 와닿았던 장면은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겠습니다만) 어떤 세계에서 에블린이 국세청 직원인 디어드리가 사랑에 빠지는 씬이었습니다. 거기서도 에블린과 디어드리는 별 거 아닌 일에 말다툼을 하고 화해하고 합니다만, 그 묘사가 아주 로맨틱하며 현실에는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밝은 흰색 조명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뒤에, ('단편우주영화')에서 지금까지 차가운 태도를 취하던 디어드리가 에블린을 이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디어드리도 이혼 당한 경험이 있으며, 에블린이 파티에서 난동을 부린 이유나 지금까지 신경질적이었던 이유가 알았다고, '매력 없는 여자'라며 전남편에게 들었을 때의 기분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녀는 고백합니다. 이에 대해 에블린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은 어떤 이상한 세계에서조차도, 매력적인 여자였어요"라고.

이 "이상한 세계"라는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한 신 없이는 전해질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세계'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경이감=센스 오브 원더를 목표로한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에, 나는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새로운 의미를 밀반입하려 합니다.

"우리들이 생활하는 일상이야말로 우주급의 대사건이며, 언제나 와이드 스크린하고 바로크한 일이다" 라는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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