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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ォン・ユンドク著『わたしの小さな画板』#9

슬픔만큼 커다란 행복
悲しみほど大きな幸せ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를 그리고 쓰면서, 지우고 싶 었던 나의 어린 시절에도 아름답게반짝거리며 빛을 내 는 소중한 일상이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어린 시절을 의식적으로 지우려고 애쓰기 시작한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화장을 해 보고, 교복 대신 예쁜 옷을 사 입고, 연애하고 싶어서 미팅에 나가고, 젠더 문제를 고 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어린 시절 내가 당했던 폭력 이 정확히 무엇인지몰랐다가 그제야 내가 몸과 마음이 크게 다쳤다는 것을 알았다.

「お母さん、私はこの服が好きです」を書きながら、消したかった私の幼い頃にも美しくきらめいて光を放つ大切な日常があったということを発見した。 幼い頃を意識的に消そうと努力し始めたのは、高校を卒業してから初めて化粧をしてみて、制服の代わりにきれいな服を買って着て、恋愛したくてミーティングに出て、ジェンダー問題に悩み始めてからだ。幼い頃、私が受けた暴力が正確に何なのか分からなかったが、その時になって私が体と心が大きく負傷したことを知った。

1979년, 집을 떠나 원하지 않던 학과에서 대학 생 활을 하면서 상처가 점점 곪았다. 여자대학에서 의무적 으로 통제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던 1학년 1년 동안 상처가 깊어지더니, 2학년에 올라 가사실습 주택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상처가 다 헤집어지는 듯 밤낮으로 시도 때도 없이못 견디게 아팠다. 실습 주택 부 엌에 놓인 커다란 부엌칼을 볼 때마다 죽음이 생각나서 울었다 . 출입이 기록되고 일상전반을 점검받는 숨 막힐 듯한 기숙사 생활, 고관대작부인을 양성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필수 이수 과목들, 요리와 예절을 가르치면서 여 성의 위치를 강요하던 실습 주택 생활, 모든 게 견디기 힘들었다 . 학교와 사회가 행사하는 폭력에 본능적으로 예민하게 반발했다 . 항상 땅바닥의 돌들을 걷어차며 다 녔고, 한없이 우울했으며 동기들과도잘 어울리지 못했 다. 아니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기 면서 성폭력에 더럽혀진 몸으로는 어떤 사랑도 할 수 없 다는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

1979年、家を離れて望まなかった学科で大学生活をしながら傷がますます膿んだ。 女子大学で義務的に統制された寄宿舎生活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1年生の1年間、傷が深くなり、2年生になって家事実習住宅で共同生活をしてからは傷がすべて擦り切れるように昼夜を問わずいつも耐え切れないほど痛かった。 実習住宅の台所に置かれた大きな包丁を見る度に死を思い出して泣いた。 出入りが記録され、日常全般を点検される息詰まるような寮生活、高官大作夫人を養成するという批判を受けた必須履修科目、料理と礼儀を教えながら女性の位置を強要した実習住宅生活、すべてが耐えられなかった。 学校と社会が行使する暴力に本能的に敏感に反発した。 いつも地面の石を蹴って歩き回り、限りなく憂鬱で同期たちともよく交わ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いや、もっと率直に告白すると、片思いする人ができて性暴力に汚された体では、どんな愛もできないという絶望の中に陥っていた。

그래도 1, 2학년 때 활동했던 동아리 '여성문제연 구회' 덕분에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 선후배들과 사 회와 여성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폭력에 저항하 는 방법을 익혀 갔다. 그러면서 차츰 절망은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분노로 바뀌었다 .이제껏 옷장 문을 닫아 걸고 모른 체했던 나에게 옷장 안 저 구석에 움츠리고 구겨져 있던 어린 내가 자꾸 말을 걸어 왔다. 모두 네 잘 못이라며 어린 나를 억누르고 짓눌러 온 가해자의 협박에 진저리를 치며 분노하고 반항했다. 이런 나를 두고 스스로는 환자라고 여겼고 , 사람들 앞에서는 팔자라고 말하곤 했다.

それでも1、2年生の時に活動したサークル「女性問題研究会」のおかげでその時間を持ちこたえることができた。 先輩·後輩たちと社会と女性について勉強し、討論しながら暴力に抵抗する方法を身につけていった。 そして、徐々に絶望はこみ上げてくる怒りに変わった。今までクローゼットのドアを閉めてかけて知らんぷりをしていた私に、クローゼットの中のあの隅に縮こまっていた幼い私がしきりに声をかけてきた。 みんな「お前の過ちだ」と言って、幼い私を押さえつけて押しつぶしてきた加害者の脅迫にうんざりし、怒り、反抗した。 こんな私のことを自分は患者だと思っていたし、人前では「運命」と言ったりした。

분노와 반항은 당시사회를 향해 옮겨 갔다. 1980년 광주를 진압한 신군부의 폭력에, 노동조합을 무너뜨리 는 기업의 폭력에, 시위대를 잡아가는 경찰의 폭력에 분 노하고 , "물러가라!" "사죄하라!" "몰아내자!"를 외치며 아스팔트를 뛰어다녔다 . 나 자신을 마주하기보다 사회 로만 내달리다가 미술운동을 정리하고 그림책을 만났다 . 그러면서 내면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첫 그림책이 '집'에 대한 것이니, 다음 책은 '옷'을 담아 볼 까 가볍게 생각하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기대하지 않 았던 아름답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만났다. 손톱에 붙 였던 빨간 꽃잎과 엄마 분곽에 들어 있던 예쁜 유리 조 각과 그림 속 공주들의 반짝이는 별 눈과 구슬 목걸이를 떠올리며,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끌어내 소중하 게 보듬었다.

怒りと反抗は当時の社会に向かっていた。 1980年に光州を鎮圧した新軍部の暴力に、労働組合を倒す企業の暴力に、デモ隊を捕まえる警察の暴力に怒り、「退け!」 「謝れ!」「追い出そう!」と叫びながらアスファルトを走り回った。 自分自身に向き合うより、社会にだけ走っていたが、美術運動を整理して絵本に出会った。 そうしながら、内面を少しずつ覗き始めた。 初めての絵本が「家」に対するものなので、次の本は「服」を入れてみようかと軽く考えて始め、その過程で期待しなかった美しくて幸せだった幼い時期に会った。 爪につけた赤い花びらと母親の分郭に入っていたきれいなガラス彫刻と絵の中の姫たちのきらめく星の目と玉のネックレスを思い出し、幸せだった幼い頃の記憶を引き出し大切に抱いていた。

그렇지만 성폭력 경험이 나의 잘못이 아님을, 내 몸이 더럽혀진 게아님을 더욱 확실히깨우치게 된 것은 책을 내고도 한참 후인 2003년 제1회 성폭력피해생존, 자말하기대회에참석하면서부터다. 어릴 때 겪었던 성 폭력은 지금까지도 내삶의 한 자락을 집요하게 끌어오 고 있으니, 어찌 보면 그 경험과 분리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에 '위안부' , 할머니 이야기인 「꽃할머니」를 쓰고 그리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회문제를 담은 그림책을 만들 때면, 그 시작은 폭력에 분노하고 가해자를 증오하고 고발하고 싶어 안달하는 심정이다 가도 차츰 끔찍함이 걷히고 그림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마도 나의어린 시절의 한 켠에 슬픔만큼이나 커다란 행복이 가득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ところが、性暴力の経験が私の過ちではないことを、私の体が汚されたのではないことをより一層はっきりと悟るようになったのは、本を出してからずっと後の2003年、第1回性暴力被害生存、自語大会に参加してからだ。 幼い頃に経験した性暴力は今でも私の人生の一端を執拗に引っ張ってきているのだから、ある意味その経験と分離した私は存在しない。その後に「慰安婦」、おばあさんの話である「花おばあさん」を書いて描くようになったのも自然なことだった。 社会問題を盛り込んだ絵本を作る時には、その始まりは暴力に怒り、加害者を憎悪し告発したがる心情であっても、次第に無惨さが収まり絵が美しくなるのは、おそらく私の幼い頃の片隅に悲しみほど大きな幸せがいっぱいに位置しているためではないかと思う。

나이가 들수록어린 내가 살았던 1960년대가 그리 워진다. 지금 내 옷장에는 몇안 되는 외출복 중에 아울 렛 매장을 지나다가 우연히 발견한, 엄마가 만들어 주셨 던 흰 원피스와 닮은 플레어 원피스가 걸려 있다.매장 에서 입어 봤을 때 판매원이 긴 허리끈을 뒤에서 묶어 주고는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2018년 봄에는 동네 주 민센터에 갔다가 성인 발레 강습이 있는 것을 보고 수 강신청을 하고 분홍색 토슈즈부터 샀다. 어릴 때 그렇 게 신어 보고 싶었던 토슈즈도 옷장 서랍에 있다. 10년 전 어느 날, 경복궁역 근처 옷 가게 좌판 옆을 지나가다가 196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빨간색 체크무늬 나팔바 지를 발견했다. 그것도 지금옷장에 걸려 있다. 봄이 끝 나가는 6월이 되면 나는 나팔바지를 입는다. 그렇게 가 끔 마음 끄는 옷을 발견하면 사곤 했는데, 이제는 그것 도 조심스럽다. 옷을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계절은 후 딱 지나가 버리고 이야기가 얽힌 그 예쁜 옷들을 앞으 로 몇 번이나 더입을까 싶어서, 계절마다 상가 진열장 을 장식하는 수많은 옷들은 어린 시절에 그랬듯 마음껏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

年を取るほど幼い私が生きていた1960年代が懐かしくなる。 今、私のクローゼットには数少ない外出着の中でアウトレット売り場を通りかかった時に偶然発見した、母親が作ってくれた白いワンピースに似たフレアワンピースがかかっている。売り場で着てみた時、販売員が長い腰紐を後ろで結んでくれてはよく似合う」と話した。 2018年春には町の住民センターに行って、大人のバレエ講習があるのを見て、受講申請をしてピンク色のトーシューズから買った。 幼い頃、あんなに履いてみたかったトーシューズもクローゼットの引き出しにある。 10年前のある日、景福宮(キョンボックン)駅近くの服屋の露店のそばを通り過ぎ、1960年代に流行したような赤色のチェック柄のラッパズボンを発見した。 それも今クローゼットにかかっている。 春が終わる6月になると私はラッパズボンを履く。 そのように時々心惹かれる服を見つけたら買ったりしたが、今はそれも慎重だ。 服を何度も着てもいないのに、季節はあっという間に過ぎてしまって、物語が絡んだそのきれいな服をこれから何度も着るかと思って、季節ごとに商店街のショーケースを飾る数多くの服は幼い頃にそうだったように思う存分見物することで満足しなければならない。

그림을 정말 배우고 싶다
絵を本当に習いたい

할머니 집이 있는 골목길어귀에서 만희와 헤어졌다 . 그 때 웃으며 내게손을 흔들던 만희는 엄마 아빠와 1년 동 안 헤어져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을 게다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의글과 그림 최종본을 출판 사에 넘기고 책이 출간되기 전인 1998년 3월, 나는 만 희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남편을 따라 중국 북경으로 떠났다 . 그림을 공부하러 가는길이었던 만큼 모질게 마음 먹고 만희를 떼어 놓았다 . 그때 나는 정말 그림을 잘 그 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

おばあさんの家のある路地の入り口でマンヒと別れた。 その時、笑って私に手を振っていたマンヒは、両親と1年間別れて暮らすことが何を意味するのか分からなかっただろう。「お母さん、私はこの服が好きです」の文と絵の最終本を出版社に渡し、本が出版される前の1998年3月、私はマンヒを夫の両親に任せて夫について中国北京に向かった。 絵を勉強しに行く途中だっただけに、思い切ってマンヒを引き離した。 その時、私は本当に絵を上手に描きたいと思っただけだった。

북경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유학생으로 부터 중앙미술학원에서 연수 중인 지방대학의 중국화 전공 교수님을 소개받았다 . 허난성에서 오신 분으로 기 억하는데, 지금은 기록이없어져 성함도 알지 못한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중앙미술학원 작업실로 찾아가 개인 교습을 받았다. 남편이 동행하여 통역을 해 주었는 데, 말을 못 알아들을 때면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선생님은 서예와 「개자원화보」(芥子園畫譜)* 임모(臨摸) 를 중심으로 붓 쓰는 법부터 나무, 바위, 산맥 그리는 법 까지 직접 시범을 보이며 설명해 주시고, 몇 장씩 반복 해 그리는 숙제도 내 주셨다. 청나라 때의 화가인 석도 (石濤, 1642~1707)의 화집을 소개받아 선 긋기와 발묵(發 墨)하는 법을 따라 해 보고, 어려운 점은도움을 받아 하 나씩 배워 갔다 . 매주 숙제를 해가면 평을 받았는데 대 체로 보이는 대로묘사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사물의 본질을 포착해 그리라는 내용이었다.

北京に到着して間もなく、ある留学生から中央美術学院で研修中の地方大学の中国画専攻の教授を紹介された。 河南省からいらっしゃった方として記憶しているが、今は記録がなく名前も分からない。私は週に一度、中央美術学院の作業室に行って個人レッスンを受けた。 夫が同行して通訳をしてくれたが、言葉が聞き取れない時は筆談で意思疎通をした。先生は書道と「開子院画報」(芥)*イム某(臨摸)を中心に筆の書き方から木、岩、山脈の描き方まで直接示範を見せながら説明し、何枚も繰り返し描く宿題も出して下さった。 清代の画家、石道(1642~1707)の画集を紹介してもらい、線引きと発墨の仕方を真似してみて、難しい点は手伝ってもらって一つずつ学んでいった。 毎週宿題をしていけば評価を受けたが、概して描写するより「自然に」事物の本質を捕捉して描けという内容だった。

◆ 명말(明末) 시대의 화가 이유방(李流芳, 1575~1629)의 「산수화보」(山水畫譜)를 바탕으로 청대에 증보 편집한 화보를 말한다. 중국산수화 그리는 법을 익힐 수 있다.

◆ 明末時代の画家イ·ユバン(李流芳、1575~1629)の「山水画報」(山水畫譜)を土台に清代に増補編集した画報をいう。 中国製の手話の描き方を身につけることができる。

7월이 되자 선생님은학생들과 함께 보름 넘게 사 생(寫生) 여행을 다녀오셨다. 그곳에서 그린 그림을 보 여 주셨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선생님의 이전 그림과 많이 달라졌던 것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여쭸 다 · 말씀하시길, 사생하러 가 있는 동안에는 모든 참가 자가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 들고 산에올라가 종일토록 그림을 그리고 , 저녁에는 각자 그날의 그림을 펴놓고 서 로 품평을 했다고 한다 . 사생은 기존의의례적이고 습관 적인 붓 선이나 낡은 생각을 부서트리는 기회였던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매일 변화하는 자연 앞에서 관찰하고 감응하며 그 생생함을 화폭에 담으려 분투했으니 변화 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선생님의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지만표정과 말투는 기분좋게 들떠 있었다 .

7月になると、先生は生徒たちと一緒に半月以上写生旅行に行ってきた。 そこで描いた絵を見せてくれた時、私はびっくりした。 先生の以前の絵とずいぶん変わったものだった。 どうしてこんなことができるのかと尋ねた·おっしゃると、写生に行っている間にはすべての参加者が朝早くお弁当を持って山に登って一日中絵を描き、夕方には各自その日の絵を開いてお互いに品定めをしたという。 写生は既存の儀礼的で習慣的な筆線や古い考えを壊す機会だったことが明らかだった。 しかも、毎日変化する自然の前で観察して感応し、その生々しさを画幅に盛り込もうと奮闘したのだから、変化は当然の結果だった。 先生の顔は真っ黒に日焼けしていたが、表情と話し方は気持ちよく盛り上がっていた。

중국에서 공부하는동안 자유푸(賈又福, 1942~ )의 화집 서문에서 읽은 글귀는 오래도록 곱썹어 볼 만했다 ."법은 끝이 없고 , 법은 한 곳에 집착되어 있지 않으니 이미 집착된 법과기술을 깨트려 나가야 한다." 전통으로 이어져 온 법을 익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만, 그 법을 깨트리는 단계에 이르러야 새로운 그림,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 전통 속에서 객관적인 법 칙을 이해하고 그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글귀는 지금도 내게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

中国で勉強している間、自由阜(賈又福、1942~)の画集の序文で読んだ文句は、長い間ゴプサプしてみる価値があった。「法は終わりがなく、法は一ヶ所に執着していないので、すでに執着された法と技術を破っ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 伝統的に受け継がれてきた法を学び、絵を描き始めるが、その法を破る段階に至ってこそ新しい絵、自分の絵を描くことができるという意味だ。 伝統の中で客観的な法則を理解し、その目で世の中を新しく見て、それを絵で描き出すことができればどんなに良いだろうか? この文句は今でも私にとって重要な原則となっている。

「만희네 집」과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는 모두 가는 붓으로 사물의 외곽선을 따고 , 선 안을 여러 번 채 색해서 메우는방식으로 그렸다 .외곽선은 밑그림을 먼 저 그린 후 그 위에 선이 비치는 한지를 올려놓고 사물 의 느낌을 살려가며 그은 정제된 선이다 . 이런 방식은 불화를 배우면서 익힌 것이다 . 한지 위에 붓을 대고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처음부터 끝까지빳빳한 철사처럼 팽팽하게 긴장된 선을 긋는 것이 핵심이다 . 여기에는 호 흡을 조절하고,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힘이 팔을 거쳐 붓 끝에 닿도록훈련이 필요하다 . 익숙해지면 옷자락의 흐 름, 얼굴의 부드러운 윤곽 , 사물의 단단한 형태 등 선만 으로도 다양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고려 불 화를 보면서 선의자유로움과 풍성함에 놀라는 것도 그 숙련된 기량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

「マンヒの家」と「お母さん、私はこの服が好きです」はどちらも細い筆で事物の外郭線を取り、線の中を何度も彩色して埋める方式で描いた。外郭線は下絵を先に描いた後、その上に線が映る韓紙を置いて事物の感じを生かしながら引いた精製された線だ。 このようなやり方は、仏画を学びながら身につけたものだ。 韓紙の上に筆を当てて下腹部に力を入れ、最初から最後までぴしゃりとした針金のように緊張した線を引くのが核心だ。 ここには呼吸を調節し、下腹から上がってくる力が腕を経て筆の先に届くように訓練が必要だ。 慣れれば裾の流れ、顔の柔らかい輪郭、物の硬い形など、線だけでも多様な感じを表現できる。我々が高麗仏画を見ながら善意の自由と豊かさに驚くのも、その熟練した技量から始まったのだろう。

그런데 그림책의 주제에 따라서는 이 기법으로 표 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 중국에 가서 수묵화를 배 지금 내 책장 한 켠에는 팔대산인(八大山人, 1624?~ 우겠다고 작정했던 이유도 그림책 두 권을 완성하고 난 후 이 기법의 한계로 인한 답답함 때문이었다. 커다랗고 두툼한 붓에 먹을 찍어서 화선지 위를 마음대로 휘젓고 싶었다 .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북경에서 수묵화를 배우는 동안 화선지에 선 그을때의 즐거움을 얻었다. 가 을 학기가 시작되어 선생님이 재직하는 대학으로 돌아 가시자, 나는 다시 공필화(I筆畵)*작가 한 분을 만나서 채색화 재료 다루는 법을 익혔다. 사군자와 서예도 조금 씩 배웠다 . 그렇게 1년을 보냈다고 갑자기 실력이 좋아 질 리는 없지만, 그림 공부하는 방법을 알아 가는 소중 한 경험이었다 . 나는 선생님들의 제안처럼, 시간만 나면 시내 서점에 나가 화집을 펼쳐보았다. 중고품 가게에서 유명 화가의 그림을 실은 커다란 그림달력을 구입해 따 라 그리기도 했다 . 서예가 작품을 탁본한 서책을 사다가 붓글씨 연습도 했다 .돌아보면 모두내 안목과 필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

ところが、絵本のテーマによっては、この技法では表現しにくい場合がある。 中国に行って水墨画を学び、今私の本棚の片隅には八台山人(1624~?)と泣くと決心した理由も絵本2冊を完成した後、この技法の限界によるもどかしさのためだった。 大きくて分厚い筆に墨をつけて画仙紙の上を勝手にかき混ぜたかった。 非常に短い期間だったが、北京で水墨画を学ぶ間、画仙池では煤の時の楽しみを得た。 秋学期が始まって先生が在職する大学に戻ると、私は再び共筆画*作家一人に会って彩色画材料の扱い方を身につけた。 四君子と書道も少しずつ学んだ。 そのように1年を過ごしたからといって急に実力が良くなるわけではないが、絵の勉強方法を知っていく大切な経験だった。 私は先生たちの提案のように、暇さえあれば市内の本屋へ出て画集を広げてみた。 中古品店で有名画家の絵を載せた大きな絵のカレンダーを購入し、一緒に描いたりもした。 書道家の作品を拓本した書籍を買う途中、筆文字の練習もした。振り返ってみると、すべて私の眼目と筆力を高めるのに役立つことだった。

중국화 기법 중의 하나로 , 붓으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린 그림.
中国画の技法の一つで、筆で細かく精巧に描いた絵。

지금 내 책장 한 켠에는 팔대산인(八大山人, 1624?体〜1703?), 석도, 푸바오스(傅抱石, 1904~1965), 리커란(李可 染,1907~1989), 자요우푸, 송대의 화조화집과 사녀화(土 女畵) 화집이 꽂혀 있다. 모두 나의 북경 시절을 담고 있 는 책들이다. 그 옆에는 조선 민화, 고구려 벽화, 고려 불화, 감로탱화, 겸재 정선 화집 등과 한국에 돌아와 찾 아다녔던 각종 전시회의 도록이 늘어서 있다 . 그림이 잘 안 풀릴 때면책꽂이 앞에 앉아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 그림을 감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의 기법들이 하 나씩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今、私の本棚の片隅には八台山人(1624~1703?)、石島、プバオス(傅抱石、1904~1965)、李克蘭(1907~1989)、ジャヨウフ、宋代の花鳥画集と土女画集が並んでいる。 すべて私の北京時代を盛り込んでいる本だ。 その横には朝鮮民画、高句麗壁画、高麗仏画、甘露幀画、謙斎鄭敾画集などと韓国に帰ってきて探し回った各種展示会の図録が並んでいる。 絵がうまくいかない時は本棚の前に座ってそれらを一つずつ取り出して絵を鑑賞する。 時間が経つにつれ、その中の技法が一つずつ新しく目に入ってく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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