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땅에 두 다리를 심는 일


일본에 와 겪은 가장 슬픈 익숙함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지진에 무심해졌다는 사실이다. 지진이 이 나라,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공포인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나는 그 두려움을 내면화하지 못한다.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어쩐지 쉼없이 요동치는 땅 위에 사는 이들의 삶에 대해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결국엔 나도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고 어느 날엔가 나도 그들에게 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할 날이 올 테니까. 

일년 내내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은, 일년의 삼분의 일만 겨우 겨울인 나라에 가도 그게 [겨울]이라는 것은 알지만 겨울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또 한 예로 얼마 전 나가노현에 있는 마츠모토에 방문하였을 때, 지대가 높은 곳에 올랐을 적이다. 동행자의 말로 깊은 산장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시내에 가는 것을 [이계異界]에 간다고 말한다고 한다. 처음엔 그게 사람들이 으레 저 자신에게 부여하는 특수성, 고유하고자 하는 욕망, 그런 것들의 연장인 줄로만 알고 비웃었더랬다. 그러나 직접 올라가 보았을 때, 그러니까 25도를 웃돌던 시내에 있다가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0도에 가까운 공기 속에 들어가게 되었을 땐, 나는 분명 [다른 세상]에 와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겨우 방문자인 나는 눈에 보이지 않고, 가져 올 수도 없는 공기의 온도 따위만 경험할 뿐이다. (물론 침략자는 그것에 자부할 지도 모른다.) 그 다음 내가 이방인이 된다면 이계와 이계를 오가는 사람이 되겠지만, 그건 공간이 아닌 시간의 문제이다.  과거의 세계를 기억의 형태로 품고 있는 이가, 또 다른 이계의 시간에 내 흔적을 남길 공백을 더듬어가는 일일 수도 있다. 그 이후는 무엇인가. 생인가. 어쨌든 분명한 건, 한 번 이방인은 영원한 이방인이다. 다시 태어날 수가 없는 노릇이니.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불안한 땅에 사니 사람들이 이모양이다. 라고 자주 말한다. 가두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상자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들, '평화'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그 말을 몹시도 차별적으로 발신하는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인데, 그 말을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나는 이들의 밖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파도치는 땅에 함께 살면서도(심지어 세금도 낸다.) 나는 흐르는 땅이 두려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흔들림은 매력적인 운동이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모든 물체에 균열을 내기 때문이다. 그 균열 틈으로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발견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잠들 수도 있다.

땅의 흔들림 위에서 우리는 모두 수동적이다. 그건 땅이 거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흔들림이 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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