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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한겨울의 경주에서 만난 온기

  만물이 얼어붙듯이 추운 어느 한겨울 날에 나는 경주에 있었다. 나는 중학생 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본 석굴암의 석불에 격하게 마음을 빼앗겨 어른이 되면 반드시 한국으로, 그리고 경주로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그러다가 십 수년 후, 오랜 세월이 걸려 버렸지만 나는 드디어 동경했던 도시, 경주의 흙을 밟게 되었다.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는 거의 없었고 여행일정을 연말연시 휴가에 맞추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한겨울의 경주, 여자 나홀로 여행″이 되었지만 이것 또한 멋있지 아니한가 하면서 처음 가는 경주여행에 설렜다.
 
  하지만 나는 금방 그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경주에 딱 도착하자 한반도에 대한파가 강타했기 때문이다. 큰 호수에는 얼음이 얼었고 산들은 모두가 눈으로 덮혀 있었다. 경주는 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관광도시이며 일본에서 떠나는 한국 단체여행이라면 꼭 들러가는 곳이다. 일반적인 경주여행이었다면 관광버스를 타고 관광지를 다니기 때문에 이런 날씨라도 아무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 경주를 찾아왔다. 이런 날씨에서는 택시도 못 잡고 게다가 노선버스 타는 방법도 알 수가 없었다. 얼어붙는 추위를 느끼며 나는 서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향했다. 간신히 노선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꿈에 그리던 불국사, 석굴암이었다. 불국사는 들어선 순간부터 뭔가 달랐다. 시들어 있는 나무 위에 눈이 덮혀 있었고 시냇물은 언 채로 뭉쳐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도 다 성스럽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마 이런 날씨가 이런 것들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제 석굴암으로… 가슴이 부풀고 기대로 가득 찼다.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는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셔틀버스가 있는데 내가 셔틀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버스가 방금 막 출발한 모양이었다. 이대로 이런 추위 속에서 30분이나 기다려야 되는가. 차라리 걸어가는 것이 몸도 따뜻해지고 낫겠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나는 석굴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차로 20분 거리를 나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큰 실수였다. 먼저 도로의 일부가 얼어 있어, 미끄러지지 않고 걸어가는데 상당한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 그날은 춥기는 해도 날씨가 좋고 햇볕이 들어 일부의 눈은 녹아 있었지만, 역시 그늘진 곳에는 눈이 남아 얼어 있었다. 길가 곳곳에는 인도가 있기는 했지만, 그 인도가 얼어 있으면 차도까지 나와 걸어가야 했고, 가차없이 고속으로 달리는 차를 조심하면서 아니, 겁에 질리면서 걸어갔다. 위험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절벽에 면한 길가에는 가드레일이 없는 곳들도 있어 걸어가다가 미끄러져 떨어진다면 나는 절벽 아래로… 게다가 ‘낙석주의’라는 표지판이 경고하듯 머리 위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걸어가다 보니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구나. 그렇지만 벌써 꽤나 걸어와 버렸다.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이제 나는 석굴암을 향해 앞으로 걸어갈 수 밖에 없다.

  언제 도착하는 건가?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죽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래쪽으로부터 올라온 차가 일단 멈추었고 차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어디 가세요?” 그것은 나에게 걸어 준 말이었다. “석굴암에 가려고요…” 라고 대답하자, 그 목소리의 주인은 "저도 석굴암에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요. 어서 타세요” 라고 한다. 살았다… 그때 나는 거의 울고 있었다. 차를 타자 밝고 상냥한 아주머니가 맞이해 주었고 차 속에서 내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주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것 같았고, 매주 차를 몰고 이 산길을 지나 석굴암에 다닌다고 했다.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걸어가려고 하신 거죠? 근데 거리가 꽤 있는데?”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부끄럽게도 아주머니는 이미 다 알고 계셨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차에 태워준 이유를 알아 냈다. “이 친구도 그래요.” 아주머니는 뒷좌석에 앉아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그 남자는 아주머니의 아들인 줄 알았는데 방금 전에 나처럼 길에서 주워온 여행자란다. 그 남자도 불국사에서 석굴암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 아주머니가 차에 태워주었다고 한다. 그랬구나. 왠지 웃겨 다 같이 웃었다.

  어느덧 석굴암에 도착했다. 내가 꿈꾸던 석굴암이다. 아... 가슴이 뿌듯하다. 오랫동안 동경했던 석굴암에 왔으니까? 드디어 석불을 보게 되었으니까?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결코 그것만은 아니다. 여기까지 데려다준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뿌듯했기 때문이다.

  한국어에 ‘온기’ 라는 말이 있다. 한자로 표하면 “温気”, 즉 따뜻한 기, 마음을 뜻한다. 한겨울의 경주에서 그저 괴로움만 가득할뻔 했던 추억이 경주 사람의 ‘온기’ 가 느껴지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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