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수성의 마녀 감상

명작의 조건은 여러개가 있겠지만 호에로 펜을 통해 우리는 확실한 조건 하나는 절대명제로서 성립함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건 마지막에 조질것.

역시나 건담의 이름이 아깝지 않은 수성의 마녀는 명작의 절대조건을 충족시켰다.

마지막을 조졌다.


  1.  솔직히 마지막의 마지막에 유니콘 드리프트를 실행하는 짓을 저지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시발 그걸 누가 해.

  2.  유니콘이 왜 8화로 그 욕을 먹었고 NT에 와서는 아 좀 이건…했겠는가. 아니 뉴타입이 무안단물이 되어버렸으니 그렇지. 파르메트야 미노프스키 정도인 거로 예상을 했지 그걸 뉴타입 입자로 만들어버리니 그저…어…좀…아니…싶어지는 것.

  3.  여튼 무안단물은 터졌고 메데타시 메데타시로 끝냈다. 후속작이나 외전을 좀 내라. 그러면 새로운 세계관 창조의 공은 인정해줄 수 있다.

  4. 결국 뭐가 문제인걸까?

    요는 세계관과 스토리의 심각한 부정결합에 있다. 건담 수성의 마녀의 세계관은 광대하고 곳곳에 구멍이 있다. 아니, 오히려 세계관의 설정을 의도적으로 성기게만 잡아놓고 막연히 엄청난 스케일감을 줌으로써 세세한 설정을 일부러 따로 알리지 않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이런 설정도 있지! 하고 내놓기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이 세계관을 얼마나 써먹을지는 몰라도 현재 수성의 마녀 세계관은 큰 백지에 파르메트라는 좀 큰 얼룩 하나 빼고는 결국 나머지 설정이란 것은 소소하게 점을 찍은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는 그런 엄청난 백지가 존재하는 것을 시청자들은 당연히 느낄 수 밖에 없는데 스토리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스케일이 작다.

    이 이야기는 결국 슬레타와 프로스페라의 이야기였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슬레타의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즉, 그냥 수성의 촌구석에서 자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슬레타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정도만을 이번 건담은 내내 보여주다보니 언뜻언뜻 보이는 광대한 세계관에 비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너무 단순하고, '건담'이 반드시 등장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불균형이 가져온 가장 큰 문제는 '적'의 부재가 되었고 막판에 솔라레이까지 처넣고도 아무런 긴장감도 없어져버리게 되었다.

  5.  스케일 작은 학원물, 조금 더해봐야 베네리트 그룹이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의 이야기를 1기 내내 하다가, 2기에서 갑자기 지구와 의회연합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존재한다고 내보냈지만 결국 그 둘은 마지막까지도 배경에 불과했다.

    의회연합이 솔라레이 쏴서 뭐 어쨌다는건가? 솔직히 저 놈들이 뭐하는 놈들인지도 모르고 우리는 시즌제 특성상 이게 바로 다음화에 끝날 걸 아는데 거기에 무슨 긴장감이 있을 수가 있나.

    6. 적이 없다면, 하다못해 잠재적인 적마저도 없는 사람에게 강력한 무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프로스페라는 슬레타의 적이 아니었다. 장애물이고, 소녀가 넘어서야 할 반동적 인물이었지만 프로스페라도 슬레타도 서로를 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

    미오리네는 조금 달라질 수 있었다. 오코우치가 코드기어스 시절 폼과 대가리였다면 유페미아마냥 돌변해서 2기에서 슬레타랑 건담을 박살내려고 혈안이 되어서 델링이랑 손잡고 나올 수 있었겠지만 안 그랬고 그냥 히로인이었다.

    구엘도, 샤디크도, 케난지도 아무도 적이 아니었다. 샤디크와 구엘은 적이었고, 미오리네와 프로스페라는 대립을 했지만 그건 결국 주인공인 슬레타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한 축을 이끌어가면서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긴장감을 주던' 샤디크가 탈락한 이후 수성의 마녀 스토리는 급격하게 동력을 잃기 시작했고 유일하게 남았던 콰이어트 제로와 최종보스 후보이던 에리크트마저 뜬금포(정말로)로 나가리가 되어버리자 이 이야기는 정말로 슬레타의 성장담 말고는 뭐 남는 게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마지막에 건담 싹 다 증발시켜버리는 거 보고 의도적으로 '건담 같은 거 보지 말라고'하는 거 같아서 짜증스러웠음. 차라리 박살이 나면 났지 왜 그걸…

  6.  결국 이 이야기는 그 시작부터 '적'이 없는 이야기였고, 너무 시야가 좁았다. 하지만 그런데 비해 전통적인 건담마냥 세계관은 광대했고 등장하는 세력들은 감히 그 저력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작은 스케일, 미시적인 이야기만 가능했던 주인공과 이 거대한 세계관이 만나서 마지막에 클라이막스 기어를 어떻게 끌어올려보고자 발악은 했으나 그 차이에 짓눌려버렸다. 그게 전부다.

    1기부터 기어를 올려서 슬레타의 성장을 훨씬 더 가파르게 하거나, 아니면 그냥 2기도 끝까지 아스티카시아 학원과 베네리트 그룹 내의 이야기만으로 끝냈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23화의 솔라레이를 페일사가 단독으로 쐈다고 쳐보자. 차라리 그게 더 그럴싸하지 않겠나? 자신들이 밀던 CEO 샤디크가 나가리 되자 발악으로 자신들의 본거지인 라그랑주1의 솔라레이를 갈겼고 막혔다. 알기 쉽다.

    그런데 여기에 정체불명의 의회연합이 끼어드니 더 스토리에 몰입이 안 되는 것이다. 페일은 아슬아슬하게 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어도 얘네는 아니니까.

  7. 이런 식의 아쉬운 점은 한두개가 아니다.

    결국 남은 건 여전히 광대하고 채워넣을 여백이 많은 세계관인데 이걸 선라이즈가 활용을 할지 어떨지는 전혀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건프라는 잔뜩 팔아치웠고 여태까지랑 '다르긴'한데 글쎄.

    여튼 재밌게 보던거에 비해서 영 떨떠름한 결말이다.

    간만에 사이트 가입해서 글 쓸 정도로는 충분히 실망스러운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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