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이기도 하며, 최대한 많이 알려드리겠습니다.

2020년 8월 31일
다음은 전후 세계 유일의 저널리스트인 다카야마 마사유키와 세계적인 중국 전문가인 미야자키 마사히로의 대화를 담은 훌륭한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일본 국민이라면 가까운 서점에 가서 당장 구독해야 할 책입니다.
전 세계인의 필독서이기도 한 이 책을 가능한 한 많이 알려드리겠습니다. 

서문 생략.
다카야마. 
북한군이 갑자기 38선을 넘어 남침했습니다.
그때까지 한반도는 일본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어의 요새였습니다.
일본이 사라지자마자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절반은 공산주의가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기독교도 싫어하지만 공산당도 싫어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더글러스 맥아더의 부하였던 윌리엄 조셉 시볼드는 『일본 점령 외교의 회고』(아사히 신문)라는 책에서 일본에 와서 정계, 재계,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공산당을 경계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썼습니다. 그는 그렇게 썼습니다.
처음에 일본을 점령한 미국인들은 공산주의나 공산주의자를 특별히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1946년 첫 총선에서 그들은 모든 공산당원을 감옥에서 석방하여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심지어 당선까지 시켰습니다.
미야자키 
미야모토 겐지와 도쿠다 규이치는 모두 감옥에서 석방되었습니다.
다카야마 
전후 첫 총선거는 GHQ가 투표를 통제한 엉성한 선거였습니다.
가토 시즈에도 여성의 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해방시켜야 한다고 요구하며 의회에 보냈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맥아더 헌법을 승인하는 데 도움을 준 맥아더의 자녀들이었습니다.
GHQ는 전후 첫 총선거에서 공산당 외에 39명의 여성이 당선되도록 조율했습니다.
미야자키 
모두 합격했나요?  
타카야마 
모두 당선되었습니다.
가토 시즈에의 기록에 따르면, 어느 날 미군 장교가 그녀에게 다가와 출마를 권유했다고 합니다.  
미야자키 
가토 시즈에의 남편은 사회당 정치가인 가토 간주였습니다.  
다카야마. 
가토 시즈에는 가족계획 운동에서 피임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미국의 마가렛 생어의 제자였기 때문에 선택되었습니다.  
일본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을 비무장화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을 없애는 것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국가를 멸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구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가토는 여성의 콘돔 착용 권리에 대해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마가렛 생어는 다양한 종류의 콘돔과 페서리를 만든 여성으로, "남자들만 놀아요. 여자들은 놀다가 임신을 한다. 불공평하다."라고 외쳤습니다.
생어는 여성도 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그네스 스메들리도 함께했습니다.
남자들은 그녀를 놀려댔고, 결혼 후 그녀는 아기를 돌보는 일만 했죠.
그녀는 너무 불만족스러워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스메들리와 가토 시즈에는 생어 밑에서 여성이 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후 스메들리는 상하이로 갔습니다. 
그녀는 상하이로 가서 남자들과 노는 연습을 하며 생어에게 콘돔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가토 시즈에가 그 배송을 도왔습니다.
미야자키. 
이상하게 노골적인 이야기인데 무슨 내용인가요?
타카야마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1997년 산케이 신문에서 발간한 "20세기 특파원"이라는 책에서 오사카 산케이의 여성 기자가 "성적인 폭풍"이라는 제목으로 생어, 가토 시즈에, 스메들리의 이상한 관계에 대해 썼습니다.
미야자키 
스메들리는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녀는 리처드 소지와도 관계를 가졌습니다.
타카야마 
오자키 호츠미와도 했어요.
당시 그가 사용한 것은 생어 도장이 찍힌 콘돔이었어요(웃음). 
GHQ는 일본인을 박멸하려고 했어요.
(중략).
전쟁 후 일본 점령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스키피오가 맺은 항복 조약 중 하나는 카르타고 귀족의 모든 자녀를 로마로 보내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야자키. 
비슷합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 맞죠?
다카야마. 
또한 농업화라는 명목으로 GHQ는 NHK에 "새로운 농촌 지역"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도록했습니다.
미야자키 
1963년에는 "밝은 농촌 마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맑은 날씨에는 밭에서 일하고 비오는 날씨에는 집에서 독서"라는 소주 브랜드가 있습니다.
다카야마 
일본은 산업화되어 있어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낮습니다.
농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5% 정도입니다.  
미야자키 
지금은 1% 정도이지만 1차 어업과 임업까지 포함하면 더 높아질 것입니다. 
다카야마 
어업 인구는 현재 40만 명입니다.
임업은 거의 제로입니다.
농림수산성에서는 1년에 1시간 일하는 농부도 농민으로 집계하고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8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는 200만 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1, 2학년 때였으니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됐지만 아직 시행되기 전인 1956년이나 1957년이었죠.
당시 표준 국가 모의고사에는 전체 인구 중 농업 인구가 몇 퍼센트인지 묻는 문제가 출제됐어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30%, 15%, 5%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저는 5%라고 생각해서 5%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5%라고 답했습니다.
100점 만점을 받은 사람은 저밖에 없어서 기억이 잘 나요.
당시에도 농업 인구는 5%였습니다. 
한마디로 농업국가도 아닌 일본에서 NHK가 라디오로 '밝은 농촌'을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RPO 특파원과 같은 서양어 특파원이 밀 수확에 대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라디오가 유일한 정보원이었습니다.
미야자키. 
기독교 방송인 "루터란 아워" 같은 것도 있었죠.
그런 종류의 라디오 방송은 매우 공개적으로 이용 가능했습니다.

GHQ는 가족계획과 우생학 보호법을 통해 일본의 인구를 줄이려고 계획했습니다.
미야자키.
2019년 일본의 출생아 수는 86만 명으로 90만 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일본을 멸망시키기 위해 GHQ가 인구를 줄이기 위해 심은 씨앗이 이제 만개한 것입니다.
타카야마 
맞습니다.
가토 시즈에와 사회당의 음모였거나 미국이 그들을 조종한 것이죠.
가토 시즈에를 통한 미국의 가족계획 계획은 '딸을 먼저 낳고 아들을 낳는 것이 좋다'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말자는 것이었는데, 전후 70년 만에 드디어 그 꽃을 피웠습니다. 
1945년, 미국은 제국주의 국회가 헌법 초안을 삼키도록 했습니다.
이듬해 4월에 실시된 첫 남녀 총선거에서 가토 시즈에를 비롯한 사회당과 공산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당선되었습니다. 헌법은 일거에 평화헌법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마디로 총독부는 총독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 반대하는 사람들을 숙청한 것입니다.
미야자키 
마치 적색 숙청과 같습니다.
다카야마 
빨갱이는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보수주의 숙청, 제국주의 통치 지원 협회 숙청으로 GHQ의 정책을 따르지 않는 모든 것을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평화 헌법을 통과시켰죠.
여기에는 현재 80만 명 수준에 도달한 가족계획도 포함되었습니다.
크로포드 샘스라는 군의관이었던 GHQ 공중보건복지국장은 생어를 여러 차례 일본으로 초청해 가토 시즈에와 함께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인들이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입니다.
또한 큰 집은 일본인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 작은 성냥갑처럼 생긴 2DK 아파트 단지를 짓게 하여 핵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점령 초기부터 일본인들은 어떻게 하면 일본 인구를 줄일 수 있을지 계획했습니다. 
인디언을 상대했다면 여성과 아이들을 죽였어야 했습니다.
남자만 죽였다면 그들은 결국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샌드 크릭 학살처럼 남자가 없으면 여자와 아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에 묘사된 살인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금은 대놓고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일본의 광범위한 가족 제도는 건전하지 않으며, 핵가족이 더 낫고 원치 않는 아이는 낙태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아사히 신문, 가토 시즈에, 사회당은 이 캠페인을 주도하여 핵가족은 2인 가족으로 충분하며 자녀는 1명 또는 최대 2명이 적당하다는 가치관을 확립했습니다.
미야자키 
그렇군요.
일본의 토끼굴 같은 주택 단지는 미국의 음모였어요.
그들은 토끼집이 작고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다고 떠벌리고 있었죠. 
1946년 송환이 시작된 후 일본에서는 연간 약 270만 명의 출생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베이비붐 세대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베이비붐 세대의 출현을 목격하면서 미국은 인구 감소를 말했나요?
뒤늦게 나온 말인가요?
다카야마. 
아니요, GHQ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가족 계획이라고 불렀어요.
1935년 가토 시즈에가 우생학 보호법에 대한 강연을 했기 때문에 GHQ는 가토 시즈에를 데려왔어요.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부적합한 아이를 조기에 거세하고 출산을 막는 활동에 관여했기 때문에 점령 직후 GHQ는 그녀를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일본의 카르타고화'를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죠. 
지난해 옛 우생보호법에 따라 강제 불임수술 피해자에게 일시금을 지급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아베 총리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당과 아사히 신문은 사과해야 합니다.
가토 시즈에 역시 우생보호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이를 가능하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가토 시즈에는 일본의 히틀러입니다.
독일에서도 히틀러는 우생학적 보호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가토 시즈에는 GHQ의 지원을 받아 이를 실행했습니다.
아사히 신문도 가세하여 GHQ가 옳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미야자키 
아사히는 정말 제목을 바꿔야 했습니다.
"빨갱이, 빨갱이, 빨갱이 아사히" 대신 "미국 아사히"가 되어야 합니다.
후일담.  

2024/4/25 in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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